꿈을 키워주는 사람
웨인 코데이로 지음
예수전도단 / 2007년 / 190쪽
▣ 저자 웨인 코데이로
그는 개척한 지 6년도 채 안 되어 출석 교인 9,000명의 교회로 성장한 미국 뉴 호프 크리스천 펠로십(New Hope Christian Fellowship; 오하우 섬 소재)의 원로목사이다. 그는 지금까지 하와이, 괌, 사모아, 핀란드, 일본 등지에 2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했고, 7년간 청소년선교회(Youth for christ)를 섬겼으며, 또 작사작곡가이자 연주가로서 활동하여 여섯 개의 앨범을 내놓았다. 현재 그는 환태평양 성경학교(The Pacific Rim Bible Institute)의 학장으로 환태평양 지역에서 21세기의 교회들을 세울 새 리더들을 훈련하고 있다. 『팀으로 이끄는 교회』, 『태도를 바꾸면 성공이 보인다』 등을 저술했으며, 가족으로 부인 안나와 세 자녀(에이미, 아론, 아비가일이)와 함께 살고 있다.
▣ 역자 김인화
1994년에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역서로는『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독』, 『아바 하나님』, 『걸어다니는 예배자』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되라고 초청하는 책이다. 언뜻 들으면, 이 말이 그간 품었던 신념과 배치되는 것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평범한 조언과 상반될 때가 많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눅 6:38).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4).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31).
이 책은 성공으로 이끄는 원리를 제시하는 책도, 성공을 거머쥐도록 도와주는 책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사업에서 성공하고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해 주는 책도 아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난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대단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자신을 버릴 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다.”
이 책에서는 ‘변화’를 제안한다. 인류 역사상 꿈을 키워주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랑과 헌신을 보여 준 이는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이들도 모두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되라. 사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 초청을 받고 있다. 자기 삶을 버리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자신의 진정한 삶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차례
1부 꿈의 힘
힘껏 날아오른다는 것
껍질을 깨는 꿈의 힘
우리는 보석함이다
발견해야 할 운명이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2부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
꿈을 키워주시는 예수님
꿈을 죽이는 것들
꿈을 키워주는 열쇠
꿈을 키워주는 사람의 초상
부르심을 향하여
1부 꿈의 힘
힘껏 날아오른다는 것
난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보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은 다양한 경험을 허락하셨다. 그중에서도 중학교 1학년 때 경험했던 일은 내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도쿄 근교에 있는 작은 군부대에서 살았다. 한번은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날 오후에, 가족끼리 차를 타고 시골로 향했다. “와! 이런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야!” 온통 푸른 잎사귀들로 출렁거리는 계곡 언저리에는 잠자는 듯 평온한 마을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게다를 신은 남자가 새를 팔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것 좀 구경하고 가세요.” 새된 그의 목소리는 거슬렸지만, 그가 파는 물건은 내 마음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나는 너무 사고 싶어서 그에게 다가갔다. “하나에 얼마예요?‘” “백 엔이에요. 마음에 드세요?” 그가 서투른 영어로 대답했다. “한 마리만 주세요.” 그러자 그는 새장 하나를 조심스레 건네며 일본식으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나는 새장에 정신이 팔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동생들에게로 급하게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나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내려가시기 전에 새장 돌려주는 거 잊지 마세요.” “네? 그럼 새를 어떻게 키우나요?” “아, 뭔가 오해하셨나 보군요. 이 새들은 키우는 게 아니라, 벼랑 끝에 가서 날려 주는 거예요.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었다. 거금 백엔을 지불했는데, 이제 와서 새를 날려 보내라고? 난 그러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내 눈을 지그시 응시하는 그의 눈빛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는 그의 말대로 하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한 뒤, 벼랑 끝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발 아래로는 녹음이 우거진 계곡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새장 문을 천천히 열었다. 순간 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꼼짝 않고 있었다. 내가 새장 뒤편을 탁탁 치자 그제야 입구를 향해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치자, 깜짝 놀란 듯 푸드덕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지배배 지저귀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나는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 동안 하늘을 날던 녀석은 비행을 멈추고 내게로 날아와 머리 위를 한 바퀴 획 돌았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이 구름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녀석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발견의 순간이었다. 온몸이 전율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새 장수에게 빈 새장을 돌려주었다. 그는 일본 전통 인사법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도 답례를 했다. 그러나 조금 전과는 달리,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정중한 인사였다. 선생님 앞에 선 어린 제자처럼 자세를 바르게 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는 인사였다. 그날 나는 새를 가지고 집에 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귀하고 소중한 깨달음을 가슴에 담고 왔다.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되는 기쁨을 맛본 것이다. 그 경험은 이후 몇 년 동안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섬김에 대한 관점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일이 내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줄 그때 알았더라면, 새 값으로 만 엔이라도 지불했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방황을 거듭하던 나는 열아홉이 되어서야 그리스도께 삶을 의탁했다. 그 무렵 나는 일본에서 새를 날려보내며 깨달은 교훈을 새롭게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이번 깨달음은 그때처럼 섬광이 번뜩이는 빛과 함께 오지는 않았지만, 내게 맡기신 사명이 무덤 속에 묻히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계신 하나님은 노엘 캠벨이라는 목사님을 내게 보내 주셨다. 약국을 운영하다가 목사님이 되신 그분은 사회 초년생인 내게 아낌없이 투자를 하셨다. 그분은 암으로 투병하던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서 다섯 아이들을 힘겹게 키우고 계셨다. 그러나 그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거실을 청년부 성경공부 장소로 내놓으셨다. 매번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는데, 그분은 항상 기쁜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셨다.
내가 서른한 살이 되던 해 하와이에 있는 힐로로 사역지를 옮겨 교회를 담임하려 할 때, 노엘 목사님은 나를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웨인, 나도 자네를 따라 힐로로 가야 할 것 같아.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 원하시는 것 같네.” 나는 봉급도 드릴 수 없고, 목사님의 미래에 대해 어떤 보장도 해 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렸으나, 그분은 부목사로 섬기던 교회에 사직서를 내고 나를 따라오셨다. 그리고는 꿈을 키워주는 놀라운 일을 하셨다. 당시 나는 두려움에 짓눌려 꿈을 펼쳐 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러나 50대 중후반이었던 노엘 목사님은 끊임없이 나를 격려해 주고, 조언해 주고, 채찍질해 주셨다. 그리고 결국 내가 꿈을 펼치며 비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기간이 무려 6년이다.
그분은 내가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내 속에서 보았다.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하나님이 일으키신 많은 기적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때 나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웠으며 성급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는 내가 모든 난관을 이기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늘 높이 비상하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그분은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셨다. 노엘 목사님이 비행기에 오를 때, 나는 엘리야가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듯한 안타까움에 휩싸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 인생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내 새장을 탁 하고 쳐 줄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 일을 그분이 해 주었다는 사실을.
세상에는 불안정한 영혼들이 많다. 그들은 누군가 자신의 부러진 날개를 싸매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비상할 수 있도록 밀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일을 우리가 하기를 원하신다.
껍질을 깨는 꿈의 힘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한다. 이 소망이 바로 꿈이다. 이 꿈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을 때부터 우리 속에 두신 것이다. 아직 씨앗 상태로 있는 이 꿈 속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임무와 DNA, 우리의 잠재력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 등이 담겨 있다. 이것은 〈슈퍼맨〉에서 클라크 켄트에게 슈퍼맨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크리스털 열쇠 같은 기능을 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그 청사진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꿈은 철저한 계획하에 우리 속에 있게 되었다. 껍질로 둘러싸인 이 씨앗 속에는 넓은 과수원과 울창한 숲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숨어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속에 네비게이션과 비슷한 영적 장치를 두셨다. 이것은 위성항법장치와 같은 역할을 해, 우리가 목표 지점에 다가가면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게 한다. 반면 길을 잃어 배회할 때는 목적지를 일깨워 주고, 현재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돌아보게 해준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으면, 우리는 주의를 흩뜨리는 모든 것을 물리칠 수 있다. 반면 꿈이 없으면 삶이 흐릿해 보이고, 올바른 인생 항로를 찾기 어렵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두신 네비게이션인 꿈에는 목표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곧장 나아가게 하는 위력이 숨어 있다. 여기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꿈이라는 거룩한 씨앗에서 싹이 트기 시작하면, 꿈은 이내 단단한 껍질을 깨고 높이 자라기 시작한다. 성장하는 씨앗은 바위도 쪼갤 수 있고 콘크리트도 뚫을 수 있다.
마르틴 루터 킹의 비전에 동참한 사람들은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꿈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이다. 한 사람의 꿈이 이처럼 한 나라를 뒤흔들 수 있다면, 꿈이 있는 교회는 과연 세상을 얼마나 근사하게 변화시킬까? 실제로 꿈은 비상한다. 그리고 그 어떤 꿈도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두신 꿈보다 강력하지 않다.
그러나 꿈은 그것을 펼치도록 도와주는 사람 없이는, 그저 하나의 가능성일 뿐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다. 하지만 일단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기만 하면, 불안정한 인생길을 헤쳐 가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을 만난 것이다.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열두 명의 보잘것없는 어부들을 데리고 예수님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 생각해 보라. 내세울 것 하나 없던 그들은 삼 년 반 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들로 거듭났다.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그들도 보지 못한 무언가를 보셨다. 그 결과, 그들 속에 있는 거룩한 꿈은 생명을 갖게 되었고, 세상이 주목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거룩한 호기심을 심어 놓으셨다. 그분이 예비하신 최선의 삶으로 이끄는 호기심을.
우리는 보석함이다
우리는 모두 보석함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보물을 세상에 풀어놓기 원하신다. 우리 속에 있는 부요가 드러날 때, 사람들은 그 빛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계획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그 보물을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아신다. 그분이 그것을 우리 속에 두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그분의 관점으로 볼 때 우리의 잠재력도 펼쳐질 수 있다.
나는 하와이 동부에 있는 저소득층이 주민의 대부분인 계곡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우리 형제들은 두 집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그러다가 육군 하사관이던 아버지가 3년 동안 일본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간 나는 그곳에서 여러 경험을 했는데 이것은 내 삶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도 나중에 커서 그분들처럼 하나님을 섬겨야겠다는 꿈을 키워 갔다.
3년이 지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아버지가 가톨릭 기숙사 학교인 메리놀 신학교에 입학시켰기 때문에 혼자서 버스를 타고 그곳까지 가야 했다. 버스 대합실에서 호의를 베푸는 한 아저씨를 따라 아침을 먹으러 그의 아파트로 갔다가 뜻하지 않게 성희롱을 당하고, 지치고 혼란한 상태로 신학교에 도착한 나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위중하니 즉시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께 전화해 엄마에게 갈 여행 경비를 좀 부쳐 달라고 했으나 아버지는 엄마가 거짓말하는 것일 거라고 하며 내 부탁을 거절하셨다. 이틀 뒤, 속달 우편으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다. 나는 교실을 뛰쳐나와 학교 뒤 숲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하나님, 아직 난 너무 어린데, 어쩌면 이렇게 잔인하실 수 있나요!”
그때, 나는 두 가지 결심을 했다. 하나는 이기적인 아버지를 죽을 때까지 증오하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내게 무관심한 하나님께 등을 돌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마약에 탐닉했다. 마약 살 돈을 구하려고 남의 지갑을 훔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2학년을 마칠 무렵 나의 비행이 학내에서 큰 문제가 되어 퇴학 조치가 내려졌다. 나는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포틀랜드로 숨어 들어가, 록 밴드에서 연주를 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언젠가 나도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는 꿈이 여전히 숨쉬고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타락한 세상과 타락한 음악도 그 꿈을 없애지는 못했다. 일본에서 잉태된 그 꿈은 혼란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았던 것이다.
꿈은 끈질기고 격렬하게 끓어오르게 마련이다! 결국, 나는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방송통신 과정을 통해 졸업장을 따냈으며,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친구의 소개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이때부터 나의 영적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유진 성경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삼십여 년 동안,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5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하는 특권도 누렸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도 지켜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놀라 넋을 잃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얼마나 놀라운 위력을 가졌는지 확인하며 두려워 떨었다.
하나님의 꿈은 하와이 작은 섬에서 태어나, 고아처럼 떠돌며 죽음의 언저리를 오가던 내게 등대가 되어 주었다. 불안한 청소년기를 지날 때도 내 손을 잡아 그분 안에 안착하도록 이끌어 주셨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게 해 주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이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내 삶을 바울의 고백으로 정의하고 싶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발견해야 할 운명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전에, 이미 어떤 존재로 자랄지 알고 계셨다. 태중에서 우리를 빚으시기 훨씬 전에 이미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그분의 때가 무르익었을 때, 가능성으로 가득 찬 씨앗을 우리 영혼에 심어 놓으셨다. 하나님은 먼저 나무를 상상하셨다. 그리고 디자인실에서 나무의 전체 모양과 세부 모습을 고안하셨다. 그런 다음, 그것을 작은 씨앗 속에 넣고는 땅에 심으셨다. 그 씨앗 속에는 나무를 키워낼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거대한 숲을 조성할 수 있는 잠재력까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속에서 장차 나무가 되는 꿈을 보시며 기적적인 변화의 사역을 일으키고 계신다. 사람들이 고집이 세고 반항적인 아이라고 눈 흘길 때, 하나님은 그 속에서 젊은 마르틴 루터의 모습을 발견하셨다. 신발가게 점원에 지나지 않았던 무디에게서도 위대한 복음 전도자의 가능성을 보셨다. 제3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불평등함에 대해 모두 탄식만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에이미 카마이클이라는 위대한 선교사를 보내셔서 그 탄식에 응답하셨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 수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행선지가 결정된다!
중요한 것은, 그 꿈이 단단해질 때까지, 하나님이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역사하는 시간까지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운명은 그분이 선택하신 과정을 통해서만 온다. 그분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신다. 그러나 반드시 그 운명을 이루시고야 만다. 지름길로 가려고 하지 말라. 길을 잃을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딤후 2:5)이라고 경고한다. 결국 지름길은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을 망쳐 버리고 만다. 길에서 이탈하지 마라! 진정 당신은 정상에 올라서서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내려다보는 감격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아직 묘목 상태인 당신의 꿈이 빨리 자라도록 서둘러 비료를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수백만 그루의 나무가 가진 잠재력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여러분을 안내할까 한다. 꽃을 피우기만 기다리며 서 있는 그 나무들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를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분의 피조물에 대한 계획을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곳으로 함께 가보지 않겠는가? 그곳에서는 영원까지도 능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마가복음 10장 45절로 함께 가보자. 어쩌면 이 말씀이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구절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예수님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 어떤 세상적인 방법도 추구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갈릴리 사람 몇몇의 요구나, 유대 민족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다. 하나의 씨앗이 아니라, 과수원 전체에 뿌려질 수백만 개의 씨앗을 보셨다.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숙련된 농부를 기다리는 과수들로 가득 찬 피조 세계 전체를 보셨다. 가능성으로 가득 찬 씨앗을 고루 뿌려 꽃피고 열매 맺도록 해 줄 숙련된 농부를 기다리는 넓디넓은 과수원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 내면에 숨겨진 꿈을 키워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구원받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자신의 형상을 본받는 데까지 나아오라고 하신다. 그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면, 우리 마음과 비전도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온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커질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와서 나를 따르라”고 손짓하신다. 이 부르심이 지금보다 더 긴급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잠재력이 당신 마음속에서 사장되어 가고 있지 않는가? 호흡이 남아 있는 한, 그것은 당신과 함께 숨 쉴 것이다. 자신의 기량이 펼쳐질 날을 고대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아직 천국에 있지 않고 이 세상을 거니는 이유는 이 세대가 요구하는 무언가가 우리 속에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좌우명은 “살아 있는 동안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 내고 빈손으로 가자”이다. 내 묘비에 ‘텅 빈 무덤’이라는 비문이 새겨지길 바란다.
2부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
꿈을 키워주시는 예수님
꿈을 키워주는 사람은 함께 호흡하며 동행한다. 성경은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행하는 분이시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막 3:14)라는 말씀에서처럼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세우신 이유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들은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와 동행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꿈을 키워주는 사람은 중보 기도를 한다. 예수님은 이것을 삶으로 보여주셨다. 중보 기도는 침묵하는 거인과 같다. 이보다 더 큰 뒷받침과 도움은 없다. 기도는 지친 여행자들에게 힘을 주며, 새로운 발견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준다. 하나님은 꿈을 키워주는 사람들의 중보 기도를 귀히 여기신다. 중보 기도야말로 이타적인 사랑의 숭고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꿈을 키워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익숙하다 못해 습관이 되어 있다. 특히 그들은 꿈이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꿈을 키워주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이 진리를 붙잡고 있으면 용기를 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 진리를 놓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연연하고 누군가에게 호감을 얻는 일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러면 승리할 수 없다. 사랑은 상대방의 장래 인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므로 자칫 상대방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사랑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최상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잠시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가 마귀에게 사로잡히거나 성급한 결론을 내릴 때, 그리고 그의 미래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빠지려고 할 때마다 즉시 경고하셨다.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징계’로 정의한다. 그러나 그 징계는 미래의 풍성함을 위한 것이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이처럼 징계는 꿈을 키워주는 사람의 손에 들리면 아름다운 도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숙련된 기술과 민감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성경적 징계의 네 가지 지침은 첫째, 견책은 관계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뢰가 바탕이 된 관계에서만 해야 한다. 둘째, 견책은 잘못에 대해서만 해야지, 절대로 사람을 겨냥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아니라 사탄을 꾸짖으시고, 그런 다음에 베드로의 사고방식을 점검하시며 표류하기 쉬운 그의 성질을 꼬집으셨다. 셋째, 윈-윈의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나뉘는 구도로 가서는 안 된다. 넷째, 상대방이 그의 가치를 확신하게 해야 한다.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견책은 다음으로 미루라. 이런 상태에서 견책하는 건 상대방의 자존심을 깎아 내리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사역을 시작할 때, 어릴적 불손한 태도를 고스란히 가지고 갔다. 오래지 않아 동료들에게 소외당했고, 리더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 그때 나를 바로 세워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래리 체프먼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작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나는 힘이 들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해서 분을 털어놓았다. 그러면 그때마다 그는 “수프를 끓일 참이었는데, 먹으러 오지 않겠나?”라고 했다. 그의 집까지 가려면 차로 30분 정도 걸렸는데, 그 사이 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거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집에 들어서면, 언제나 맛있는 수프가 준비되어 있었다. 수프를 먹으며 우리는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해결하는 법과 삶의 교훈을 배우는 법, 진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래리는 내 약점보다 장점을 부각시켜 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카세트를 선물해 주며 음악을 해보라고 격려했다. 그건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가져 보는 것이었다. 내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잘해야 해. 이왕 하는 거 잘해야지.” 그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물론 실수를 안 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이것도 잘 생각해 보면, 자신이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 그렇다고 너무 빨리 나가는 건 좋지 않아. 그러면 잘못된 길로 가도 방향을 틀 수 없거든. 가장 좋은 건 천천히 가면서 표지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거지.”
래리는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종횡무진 날뛰는 야망에서 나를 지켜 주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칼을 칼집에 넣는 법과 화를 삭이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표지판이 나타났을 때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대신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지금 그는 하나님 곁으로 가고 없다. 그러나 내 영혼에 남은 그의 발자취는 너무도 깊어서 난 아직도 그가 내 곁에 있는 것 같다. 그와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내 삶은 지금과 너무나 다를 것이다. 하늘나라에 가 그를 만난다면, 아마 날 보자마자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어서 와, 안 그래도 맛있는 수프를 끓이려던 참이었는데, 함께 먹겠나?”
꿈을 죽이는 것들
꿈을 키워주는 사람은 코치와 같은 존재다. 그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방향을 제시해 준다. 꿈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고 희망을 발기발기 찢어 버리는 야수들도 없애 준다. 인류 역사의 새 장을 열었을지 모를 생각과 창의적인 대답들이 실수나 인격적 결함, 실패와 책임에 대한 두려움, 거절감에 짓눌려 얼마나 많이 묻혀 버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꿈을 죽이는 것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살그머니 다가와서는 순식간에 우리를 포위해 버린다. 밖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을 가하고 안으로는 조소와 비난을 퍼붓는 협공을 취한다.
꿈을 파괴하는 것들은 자만심, 두려움, 분노, 무기력, 탐욕 등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때로는 무가치함이라는 베일로 자신을 가리기도 한다. 어떤 모습이든, 이 살인마는 우리에게서 미래와 가능성을 앗아가 버린다. 이렇게 우리 꿈을 파괴하는 존재의 정체를 밝혀 무장 해제시키기 위해서는 코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것은 가정, 교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꿈을 키워주는 사람의 가장 큰 임무는 성품을 코치하는 것이다. 성품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코치도 있는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방향과 지침을 제시해 줄 코치들이지, 비판과 판단에 능숙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사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므로 그 사이를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해 줄 친절한 친구가 필요하다.
꿈을 키워주는 열쇠
하나님은 꿈을 키워주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 열쇠를 맡기셨다. 첫째 열쇠는 ‘영향력 관리하기’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은사가 있다. 이 은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을 구체적으로 격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독려할 수 있는 성경 말씀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라.
두 번째 열쇠는 ‘권위 관리하기’이다. 하나님은 꿈을 키워주는 모든 사람에게 권위를 허락하신다. 그들이 이 권위를 잘 사용해, 시간 속에 묻혀 버릴 수도 있을 꿈들을 세상에 펼치도록 도와주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단,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의 의도대로 사용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권위는 종의 도구이지, 리더의 무기가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사도의 권위를 허락하신 이유가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이 진리의 말씀을 영혼 깊이 새기자.
세 번째 열쇠는 ‘문제 관리하기’이다.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백성들 안에 있는 문제들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문제투성이다. 우리 주변에는 풋내기 바울, 경솔한 베드로, 확신 없는 디모데 같은 젊은이들이 수없이 많다. 애송이 브리스길라, 마르다, 루디아 같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꿈을 키워주는 마음을 갖지 못하면, 이들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이런 위대한 젊은이들은 투박한 종이에 싸여 허름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많은 문제들이 그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꿈을 키워주는 사람들은 볼품없는 겉모습 속에 감추어진 가능성을 꿰뚫어 본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키워주는 사람의 초상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자기 백성을 향해 고동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랑은 온실과 같아서, 그 안에서는 생명이 무럭무럭 자란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은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가정과 관계 안에서 온실 효과를 낸다. 그래서 정상적인 환경에서라면 죽었을 것들을 꽃피게 하고 번성하게 한다. 온실을 만드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따뜻한 말 몇 마디와 진정한 관심의 표현이면 된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주는 말을 자주 하라.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꿈은 쑥쑥 자랄 것이다. ‘말’이 온실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온실을 파괴하는 것 역시 ‘말’이다. 경솔한 말은 미래의 싹을 잘라 버리고, 희망을 앗아가 버린다.
이처럼 꿈을 키워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마음과 입, 그리고 눈이 필요하다. 예레미야 15장 19절은 꿈을 키워주는 사람들을 양성하기 위해 천국이 어떤 교과 과정을 진행하는지 살짝 보여 준다.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다.” 꿈을 키워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말하는 능력이 있다.
1983년 12월 8일,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매서운 날, 필라델피아의 한 가정에서 12살 난 트레버 페렐이란 소년이 저녁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못이 박힌 것처럼 화면에 고정돼 있었다. 화면에서는 노숙자들의 힘겨운 겨울나기가 보도되고 있었다. 갑자기 내려간 수은주로, 그들이 동사할지도 모른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뉴스가 끝나자 소년은 심난했다. 자기 동네에 그렇게 어려운 분들이 계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담요를 노숙하는 분께 가져다드리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담요 하나 가져다드리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는 잽싸게 자기 방에서 담요와 베개를 갖고 나왔다. 소년의 부모는 어린 아들이 차가운 밤에 거리로 나가는 게 싫었지만, 아들의 결심이 너무 확고해 어쩔 수 없이 돕기로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자동차 조수석에 앉히고 캄캄한 밤거리를 달렸다. 그것이 그들의 삶뿐 아니라, 필라델피아 도시 전체를 영원히 바꾸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밖은 살을 에는 듯 추워 보였지만, 차 안은 따뜻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한 남자가 웅크리고 앉아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트레버는 차를 세워 달라고 하고는 담요와 베개를 갖고 가 아무 말 없이 그 사람에게 내밀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트레버의 눈을 바라보다가 떨리는 음성으로 무어라 짤막하게 속삭였다. “하나님이 널 축복하실 거다.”
그 말은 트레버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트레버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다음 날 밤, 그는 더 많은 담요를 노숙자들에게 가져다주자고 아버지를 졸랐다. 이런 식으로 며칠을 다니다 보니, 페렐 씨네 집에는 담요와 베개가 남아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트레버는 도움을 요청할 만한 이웃들의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트레버가 노숙자들에게 베푼 온정에 대한 이야기는 삽시간에 필라델피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일간지들은 트레버의 자선을 특집으로 보도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자선의 손길이 한꺼번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대학 동아리 연합회에서는 회원 전원이 봉사를 자원했다. 페스트푸드 체인점에서는 푸짐한 먹거리를 공급했다. 이를 위해 트럭을 기증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 육군의 보급을 담당하는 장교는 군인들에게 제공하고 남은 담요와 코트가 창고에 가득 있으니, 트레버가 원하면 언제든 노숙자들에게 나눠 줘도 좋다고 했다. 오래지 않아, 필라델피아는 어딜 가든 트레버가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러나 트레버에게서 시작된 이 거대한 자선의 물결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노숙자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시 공무원들이 난색을 표명했다. 그들은 12살 난 어린 소년이 그토록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 불쾌 해했다. 그들은 전문가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어, 문제점을 짚어 보게 했다. 트레버 역시 패널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진행자는 먼저 저명한 대학의 사회학 교수에게 노숙자들에 대한 트레버의 접근법을 논평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는, 굵고 낮은 목소리로 학자적 견해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노숙자들의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트레버 군이 쓰고 있는 방법은 너무도 간단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복잡한 문제는 해결책 역시 복잡하기 마련인데, 이제 겨우 12살 난 꼬마가 그걸 알 리 없죠.”
진행자는 트레버에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전 아직 어려서 교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저녁에는 담요를 나누어 주면서 그분들께 여쭤보겠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복잡한 해결책을 강구해 그때 도와 드리는 게 좋은 방법인지.”
트레버의 선행은 인도 캘커타에까지 알려졌고, 이 소식을 접한 테레사 수녀는 깊은 감명을 받아 그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장을 보내기도 했다.
대체 이 모든 일이 시작된 첫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는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트레버는 다른 소년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수줍음 많고 나설 줄 모르는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가 처음 거리로 나가기 몇 주 전, 그 선생님으로부터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꿈을 갖고 계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렴. 하나님이 너희들이 무슨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 보여 주실 테니.”
트레버의 꿈은 지금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트레버의 노력으로 노숙자들에게 제공된 식사만도 2백만 인분이 넘으며, 주택과 일자리를 공급받은 사람은 천8백 명이 넘는다. 게다가 1983년 이후로 필라델피아에서는 길에서 얼어죽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나눔은 어떤 프로그램이나 캠페인이 아니다. 그저 담요와 베개를 들고 밤거리 속으로 나갈 때 나눔의 기적은 시작되는 것이다. 꿈을 키워주는 사람의 임무는 이처럼 아주 작고 간단한 것을 보게 해 주는 것이다.
부르심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들의 영혼 속에 거룩하게 장착된 이 꿈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임무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 꿈 때문에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분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 꿈은 깨끗하고 정직하게 기업을 운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역자가 되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열정을 쏟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꿈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그들의 가슴속에 있다.
그러나 그 꿈들은 가슴 속에 갇힌 채 제대로 날갯짓을 못할 수도 있다. 만일 그 꿈들이 새장을 박차고 나온다면, 우리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하나님의 기쁨은 사람들의 꿈이 비상하는 것을 볼 때 온다. 그래서 꿈을 키워주는 사람이 되라는 초청의 글을 보내신다. 그분과 그분의 약속을 믿는 모험을 감행해 보지 않겠는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는 꿈을 깨워 하늘 높이 비상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