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특급작전
▣ 저자 구스타프 쉘러
구스타프 쉘러는 1929년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1950년대에 영국으로 건너가 여행사를 운영했다. 1974년에는 관광 사업에 공을 세워 영국 여왕에게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82년 미국의 한 성경학교에 참석했을 때,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우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 후 구스타프와 아내 엘사는 ‘내 백성을 가게 하라(Let my people go)'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은 구소련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과 위로를 주었고, 그들의 어려운 상황을 교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구스타프는 2000년 2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운 에벤에셀 재단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독립 국가 연합에 있는 7만 명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귀환하도록 도와주었다. 에벤에셀 재단은 지금도 구소련 국가들에서 약속의 땅으로 유대인들을 데려오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 역자 김요한 ․ 석은주
▣ Short Summary
이 책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성경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예언이 세세한 부분까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의 눈으로 보면 우연으로밖에 볼 수 없는 많은 만남과 사건들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주관하셨음을 보여준다. 구스타프 쉘러는 50년 동안 주일 성수를 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러던 그는 1979년, 목사의 설교와 초청을 계기로 50세의 나이에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과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이 계속되면서 쉘러는 1982년에 유대인의 회복에 대해 부담을 갖게 된다. 전 세계가 구소련의 군사력 증강에 긴장하고 냉전 체제가 최고조에 이른 1983년, 쉘러는 극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소련을 돌아다니면서 “땅 밟기”를 한다. 땅 밟기 기도에 참여한 사람들조차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을 비롯하여 거대한 레닌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광장들을 밟았고, 교통의 요지, 해상 요충지, 기차역 등을 밟으며 기도했다. 그리고 이 기도 모임은 유대인의 귀환을 돕는 에반에셀 재단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새 언약! 두 번째 출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실제로 성취되어 가는 놀라운 현장을 이 책을 통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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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추천사 - 내 백성을 가게 하라 / 제2의 출애굽이 있기까지
서 문 -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 이스라엘
1장 그들을 돌려보내라
2장 가서 도우라
3장 작전을 개시하라
4장 깃발을 올려라
5장 사랑으로 이기라
6장 나처럼 낮아지라
7장 약속의 성취를 기대하라
8장 땅 끝까지 찾아가라
후기 - 부르심은 끝나지 않았다.
1장 그들을 돌려보내라
알리야를 위한 스케치
1982년 어느 저녁, 영국의 한 호텔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신사가 맞은편에서 다가왔다. 의사이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그가 말을 꺼냈다. “저는 막 이스라엘에서 돌아왔습니다.” 귀가 솔깃했다. 그 해 봄, 나와 아내 엘사는 10주 성경 공부를 마치고, 유대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몰랐지만 나와 엘사는 이스라엘로 가야할 것 같은 강한 의무감을 느꼈다. “저는 예루살렘에서 열린 초막절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스티브 라이틀이라는 분이 소련에서 유대인의 대이동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들려주었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가 유대인들의 귀환을 예언한 선지서를 묵상하고 있던 때, 전혀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예언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나는 기도했다. “주님, 스티브가 아직 이스라엘에 있다면, 그를 만나게 해 주옵소서. 그의 비전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스티브는 국제 순복음 사업가 유럽 지부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뉴올리언스에서 그의 설교를 들은 적은 한 번 있었다. 엘사와 나는 2주 후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엘사와 함께 산책을 하며 스티브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을 때, 정말 놀랍게도 스티브처럼 생긴 사람이 반대편 인도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스티브, 스티브!” 우리는 도로 건너에 있는 그에게 소리쳤다. “잠깐만요, 당신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전 당신을 압니다. 당신을 만나야만 합니다.”
엘사와 나는 스티브가 1974년에 6일간 금식하면서 받았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식사하는 것조차 잊었다. “소련에 있는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이 비친 대형화면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길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많은 사역자들을 일으켜 세우셨으며, 그 사역자들은 소련의 당국자들을 향해 선포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그러자 소련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고 마음이 더욱 강퍅해졌습니다. 하지만, 재앙과 심판이 소련을 쳤으며 결국 소련은 무릎을 꿇고 유대인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스티브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엘사와 나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 이 비전이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모든 선지서의 상당 부분이 유대인들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티브는 유대인 귀환에 대한 비전을 받은 지 9년이 흘렀지만, 자신의 비전에 대해 공식적으로 말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항상 하나님께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조명해 주실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지 않으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도 지금이 유대인의 귀환에 대한 비전을 세계적으로 알려야 할 때라고 느끼고 있었다. 특히 그 비전은 교회가 알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이사야 49장 22절을 보면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본토로 귀환하는 일에 내가 무슨 일이든 담당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깨어 있는 자의 외침
나는 스티브의 비전을 알릴 수 있는 집회를 열기 위해 영국으로 스티브를 초청했다. 마을 회관 집회에서 우리는 거대한 귀환 사건을 말하고 있는 성경 말씀(신명기 30장, 이사야 11장, 35장, 43장, 예레미야 3장, 16장, 23장, 30-31장, 에스겔 36-39장, 스바냐 3장)을 모아 놓은 안내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스티브는 그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소련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이 왜 성경의 예언의 말씀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전 세계의 믿는 자들의 마음 가운데 유대인들의 귀환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뿐만 아니라, 내가 만난 유대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 가운데 소련의 유대인들에게 행하실 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한 영을 통하여 지휘하시는 엄청난 사건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한 사건들을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이 있었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소리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신호였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예언의 신호를 보내실 것인데, 그 신호는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함께 예레미야 23장 7-8절로 가 봅시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한 나라에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소련입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210만 명의 유대인들이 소련 땅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세계의 모든 나라에게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 기회는 유대인들이 어떤 나라에 살고 있든지 간에, 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오늘 밤 여기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양했다. 그 중 한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성경 말씀들이 예언하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영의 눈이 열렸다는 것이겠죠. 나는 지금껏 그런 성경 구절들을 이해하지 않고 읽었어요.”
흔들리기 시작한 철벽 문
집회 이후, 스티브와 나는 영국에 있는 교회에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여행을 나섰다. “지금은 누군가 소련 연방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스티브는 가는 곳마다 이렇게 외쳤다. 1983년도는 냉전이 가장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유대인들이 자유롭게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소련에 대한 심판의 수레바퀴가 이미 돌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자연 재해와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으면서 소련 연방은 가라앉고 있었다.
중보 기도자들은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잡은 지 한 달 후, 소련 연방의 주요 유대인 공동체를 찾아다니는 기도 여행을 했다. 가는 곳마다 거대한 레닌 동상 주위를 빙빙 돌며, 우상의 무너짐을 위해 기도하며 선포했다. 그들은 교통의 요지와 공항, 해상 요충지, 기차역 등을 찾아다니며,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다. 우크라이나의 흑해에 위치한 오데사 항구에서도 땅 밟기 기도를 했다. KGB 요원들과 마주칠 뻔한 위험 상황이 계속됐다. “이런 행동을 통한 우리의 기도가 과연 응답될까요?” 요한네스가 미심쩍은 듯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이 한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다고 간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6년 후에는 그 예언이 실현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985년 말, 스티브와 요한네스는 다시 소련으로 갔다. 이들은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미국, 독일에서 온 13명의 중보 기도자들과 팀을 만들어“땅에 임하는 심판과 황무함”이라는 말씀을 주제로 3일 동안 금식과 기도로 준비했다. 12월 31일 매서운 추위로 감싼 오후, 그들은 붉은 광장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크렘린 궁전의 벽을 따라 걷기도 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그 때 핀란드 목사님이 크렘린 궁 옥상 위의 하늘을 가리켰는데, 그 어두운 하늘에 거대한 붉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 별의 뜻이 무엇이죠?” 목사님이 묻자 신비주의와 뉴에이지 철학을 전공한 한 스웨덴 중보 기도자가 말했다. “그것은 인간의 힘을 상징합니다. 공산주의 체제는 인본주의를 자랑하고 소련은 유물론적 업적을 숭배하지 않습니까. 예레미야 17장 5절은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일행 중 한 명이 말을 꺼냈다. “저 붉은 별이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8장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한번 보세요. 한 별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나와 있어요. 저 붉은 별이 바로 그 별입니다.”
그 중보기도를 마지막으로 4개월 후, 소련과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의 핵 연료 발전소인 체르노빌 폭발 사고였다. 방사능이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의 공기와 표층과 바다로 유출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두통과 기침 가운데 피를 쏟으며 고통을 받았다. 공산당 관리들은 체르노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은폐했다. 의혹이 제기되어 대피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수년 안에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방사능 유출은 그 영향이 미국 동부 해안에 내린 비에서까지 발견되었다. 다음은 모스크바 주재 특파원이 쓴 1986년 7월 26일자 『뉴욕타임즈』의 첫 머릿기사다:
최근 한 유명한 러시아 작가가 낡은 성경책을 꺼내어 능숙하게 요한계시록을 펼쳤다. 그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요한계시록을 인용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더라”(계 8:10-11). 그는 ‘쑥’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쓰여 있는 우크라이나 말로 보여 주었다. ‘쑥’은 우크라이나어로 ‘체르노빌’이라고 진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무신론자인 이 작가는 ‘체르노빌이라고 불리는 별’에 대해서 이미 요한계시록에 예언되었다는 사실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소련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유대인들을 가두었던 철벽 문이 흔들렸다. 그리고 우리는 마을회관 집회에서의 스티브의 말을 떠올렸다. “‘유대인들의 귀환은 역사 가운데 일어나는 일시적인 이상 사건일 뿐이야’라고 아무도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도...”
2장 가서 도우라
50년을 기다리신 하나님
예루살렘에서의 중보 기도 모임은 매년 열리는 행사가 되었으며, 나는 그 행사의 행정적인 절차를 담당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예루살렘의 한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빌 스틸러스 목사님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본 후 말했다. “꿈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들 앞에 한 신사가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이 신사를 도와서 유대인들이 땅 끝에서 본토로 돌아오도록 협력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을 본 순간, 그 신사가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 마치 하나님께서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너는 언젠가 유대인들이 북방 땅에서부터 본토로 돌아오도록 돕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한때 사업과 결혼했을 정도였다. 사업이 점차 확장되어 기사 작위를 받는 나의 꿈이 실현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1979년 가을 주일 날, 하나님은 나의 꿈을 바꾸셨다. 새로 부임해 오신 목사님이 설교를 끝낸 후, 하나님께 삶을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성도들을 지나 커다란 나무 십자가 밑 연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50세가 되서야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다. 그날 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펼쳤다.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말씀 한 구절이 유난히 빛났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누가 5:24). 이후로 나의 새로운 삶은 세상의 성공이 줄 수 없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후 수년 간 잘 진행되어 오던 사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올려 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문제들을 잘 해결하시는 분이시기에... 아내와 나는 <파수꾼의 양식(Daily Watchwords)>이라는 교재를 가지고 매일 말씀을 묵상했다. 주님께서는 그 말씀으로 다시 길을 열어 주셨고, 사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돌아갔다. 절망적이던 상황도 이윤을 많이 남기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 해에는 다른 어느 해보다 많은 수익을 올렸다. 사업은 점점 주님의 것이 되어 갔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나의 노력으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무릎 기도로 내놓은 생명
몇 년 동안 기도하고 사역했던 곳에 기적이 찾아왔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소련 전역을 휩쓸었고, 1989년 겨울에 드디어 문이 열려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갈 자유를 얻었다. 20만 명에 가까운 유대인들이 13개월 사이에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1991년 1월 예루살렘 기도 모임 기간에도 35,295명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중보 기도팀은 철저히 선별된 사람들이었다. 예정된 많은 팀들이 걸프전으로 인해 불참하고 예약을 취소한 상황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 왔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중보자들이었으며,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중보 기도자들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드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해의 중보 기도 모임은 어느 때보다도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위기의 순간에 더 확고하게 하나 되게 하신다. 우리는 강력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군대가 되어 움직였다. 우리는 이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서 두 가지 예언을 성취하시길 기도했다. 하나는 이스라엘 땅이 복음화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온전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기도 모임이 진행됨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동을 취하길 원하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중보 기도 모임의 지도자인 요한네스에게 말했다. “분명한 확신이 있어.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북쪽에 있는 유대인들을 고토로 돌아오도록 돕기를 원하셔.” 요한네스도 내 말에 동의했다. “맞아, 구스타프, 그 일은 바로 주님께 속한 일이지.” 똑같은 생각을 심어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둘 다 놀라고 말았다.
그 즉시 소련에 있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데 쓰일 헌금을 모았다. 모두 3만 달러였다. 이 작은 모임에서 3만 달러를 모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확신하면서 우리 모두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내게 맡겨진 책임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숨었을 것이다.
3장 작전을 개시하라
에벤에셀 재단 설립
중보 기도 모임 이후 4개월이 지났다. 목요일 새벽 4시 40분, 250명의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첫발을 내딛었다. 처음으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광경을 지켜본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1980년대에 계속 기도하고 꿈꾸어 왔던 것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중보 모임에서 모인 헌금은 ‘유대인 이민국’에 기부하여 이민자들을 위한 비행기를 대절하는 데 사용하도록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중보 모임 기도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주소록이 있을 뿐이었다. 나와 스티브는 ‘출애굽 작전’이라고 명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에벤에셀 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간단한 편지와 함께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 편지를 보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꽤 많은 답장이 왔다. 그들은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돌아와야 할 시간에 대해서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유대인들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매일 편지를 받았다. “구스타프, 유대인들의 귀환을 위한 비행기 표를 위해 헌금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이러한 편지들은 나를 정말로 겸손하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낸 헌금도 많았다. 영국의 앞 못 보는 세 자매는 작정하여 저축을 한 후 한 사람의 비행기 값을 보내 주었다. 병상에 있는 60세 할머니 한 분은 50달러밖에 안 되는 연금에서 매달 2달러씩을 보내 주었다. 30명의 자매들이 모이는 한국의 한 기도 모임에서는 아직 헌금은 없지만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격려 편지를 보내 주었다. 그 후 그들은 7,500달러의 헌금이 동봉된 편지를 보내 주었다. “우리는 기도로만 그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 달 간 모은 헌금을 드립니다. 유대인들의 귀환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토 유대인들이 이민자들에게 베푸는 사랑과 관심도 감동적이었다.
새 항로 개척
1991년 5월, 믿음의 형제들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그들은 비행기로 돌아오는 유대인 귀환의 비전을 다음 구절로 상기시켜 주었다.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사60:9).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비행기가 아닌 배로 이송하는 방법을 생각나게 하셨다. “이 일이 하나님께 속한 일이라면 제게 해결책을 알려 주세요.” 기도를 한 후에, 몇 년 간 사무실에 걸려있던 액자를 바라보았다.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27). 그때서야 그 구절의 윗부분에 배 모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하나님께서 손으로 배를 새겨 넣으시고는 “내가 함께하면 배로 사역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항상 의심에서 떠나지 못하는 내게 하나님은 계속 확신을 주셨다. 몇 년에 걸쳐 배운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의심이 몰려온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뢰함으로 행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의 뜻은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의 유대인 이민국을 찾아갔다. 그러나 배로 유대인을 실어 나르자는 나의 생각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협력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가는 곳마다 문이 꽝 닫혔다. 모든 사람이 협력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이런 반응에 흔들렸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머물고 있는 아파트에서 3일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직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하게 하셨다. 나는 매우 낙심해 있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내가 이 사역에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또 구했다. “주님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제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셨고 말씀해 주셨다. “아들아, 이제 나의 길을 보여주겠다.”
유대인 이민국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틀 후에 취리히에 있는 힐튼 호텔에서 데이비드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유명한 사업가 협회의 대표였다. 그는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 또한 1951년에 배를 타고 이스라엘에 돌아왔으며, 그때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소련 연방의 유대인 공동체와 연락을 취해 볼 것을 약속했다. 소련 연방으로부터 유대인들을 실어 나르는 항구로 가장 적합한 곳은 ‘오데사’ 항구였다. 오데사 항구는 이스라엘까지 다른 나라의 국경을 침해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해양길이 있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스의 배 ‘M-Sky호’
적당한 배를 찾기 위해 그리스로 갔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기 위해 그분의 얼굴을 구하며 저녁을 금식하고 잠잠히 기도했다. 그리스의 피라우스 항구로 가서 적합한 배를 찾아보았다. M-Sky호가 눈에 띄었다. 나와 동행한 조선 공학자 렉스는 이 배를 보더니 매우 흥분했다. “이것이 진짜 선박입니다.” 그가 소리쳤다. 선박 전문가의 조언은 고마웠지만, 이렇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필요했다. 배가 너무 커서 부담스러웠다. 하나님의 신호를 기다렸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60장9절을 다른 번역으로(Living Bible) 상기시켜 주셨다. 이 배는 성경의 ‘다시스의 배’가 ‘가장 훌륭한 배’로 번역이 되어 있었다. 11월 말에 계약이 완료되었다. 실로 엄청난 싸움이었다. 조건들이 까다로웠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계약서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주님께서 이 배의 운행을 지켜주시고 복을 주소서.” 드디어 출애굽 작전이 시작되었다.
4장 깃발을 올려라
불안한 항해의 시작
나와 아내는 오데사에서 출항을 준비하기 위해 머물고 있었다. 1991년 12월 15일 밤, 이스라엘에 있는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구스타프, 당신이 받은 항해 허가서는 여행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허가서이지, 이민자들을 수송하는 허가서는 아닙니다. 다른 허가서를 받을 때까지는 항해를 연기해야 합니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자원해서 그리스로 모이고 있고, 선박 회사도 승무원들을 소집했다. 유대인들은 이미 오데사 항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을 생각해 본 후 하나님께서 파란 신호등을 깜빡거리고 계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항해를 연기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대답했다. “그럼 모든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변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가 오데사항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이민자 탑승 허가를 받지 못했다. 소련 연방은 이미 붕괴되었고, 중보 기도자들이 둘러싸고 기도를 드렸던, 여러 도시에 있는 레닌의 동상들도 이미 철거되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선박의 항해 허가를 받기 위해 찾아갔던 소련 정부에 의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인간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간구해야 함을 알려 주셨다. 아내와 나는 이민자 탑승 허가권을 놓고 주님께 기도했다. 그러자 모스크바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두 명이 항구에 나타났다. 그들이 우리가 기도해 왔던 이민자 항해 허가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극적인 응답은 항해 36시간 전에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약속의 땅, 감격의 귀향
M-Sky호는 160m의 길이에 4층 높이로 되어 있는 매우 아름답고 커다란 배였다. 배가 항구로 다가오는 동안 배 위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양각 나팔을 불었다. 모세의 출애굽 때에 해방을 선포하며 불던 나팔 소리 같았다. 이민자들은 건물에서 뛰쳐나오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나님, 하나님은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 시편 147편을 떠올리며 노래를 불렀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1-2).
550명 정원이 모두 승선했다. 그 중에는 절름발이와 눈먼 자도 있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묘사한 그대로였다. M-Sky호는 자정이 지나 돛을 올렸다. 불빛을 밝히며 항구를 빠져나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드디어 구소련 연방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는 뱃길을 그리스도인들이 최초로 연 것이다. 이틀 후 빨간색 소련 국기는 크렘린궁에서 내려졌다. 중보 기도자들이 크렘린 궁을 돌며 공산주의 붕괴를 선포한 지 6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이스라엘의 항구 도시 하이파에 M-Sky호가 들어왔다. 이 배에 대한 보도는 테러 공격을 우려하여 배가 이스라엘에 도착하기 전까지 금했었다. 라디오 뉴스가 도착하는 날 보도되자, 수많은 방송과 신문 기자들이 해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박수 소리와 환호, 밴드의 연주와 함께 배가 항구에 정박했다. 전 세계에 M-Sky 호의 소식을 알린 AP 통신은 “유대인들이 배를 통해 새로운 출애굽에 성공했습니다”라고 전했으며, 이스라엘의 주간 신문들도 이 소식을 대서특필하였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의 귀환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배가 들어오는 광경을 보았을 때는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요하네스는 말했다. “6년 전 오데사 항구에서 기도했던 일이 생각나는군.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어. 사실, 우린 그때 우리의 중보 사역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지금 보니, 그건 예언적인 행동이었어.” 정말 놀라웠다. 모든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다.
5장 사랑으로 이기라
헌신된 사랑이 움직인 두 번째 항해
배가 하이파에 무사히 도착한 후 담당 변호사의 팩스를 받았다.“구스타프씨, 이민국에서 출애굽 작전을 완전히 취소시키겠다고 협박까지 합니다. 이스라엘 정부에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 활동을 목격했답니다. 그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민자들이 예루살렘의 선교사들을 방문하고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합니다.”라는 담당 변호사의 팩스를 받았다. 나는 이런 문제가 야기되리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자원 봉사자들은 그들을 사랑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실천하라고만 하셨기 때문에 순종했을 뿐이다. 나는 이 점을 이스라엘 정부에게 분명히 해두었다.
M-Sky 호는 두 번째 항해를 위해 오데사 항으로 출발했다. 나는 갑판에 올라 모든 자원 봉사자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 모두는 이 사역에 자부심을 가지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이 사명을 복음 말로 전하는 선교사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봉사자로서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우리의 순수한 동기가 왜곡된 상황이 마음 아팠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선상 위의 자원 봉사자들이 이민자들을 꾀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키려고 한다는 오해는 커다란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데사에 머물러 있을 동안 한 유대인 부부가 찾아왔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영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데사 항구에 있는 이민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것을 반대해야만 했다. 그들은 우리의 이러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에스겔 36장 말씀으로 위로를 받았다.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첫 번째 출애굽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만들어냈지만, 두 번째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민자들과 정부 간에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자원 봉사자들이 두 번째 항해에도 함께 승선할 수 있게 되었다. 자원 봉사자들은 이민자들이 무거운 짐을 갑판까지 옮기는 일을 도와주었다. 이민자들에게 다과를 베풀기도 하고 간단한 히브리어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심지어 누군가 세관에서 아기 기저귀를 압수당했을 때, 아기를 위해 자신들의 속옷을 찢어 주기도 했다. 하이파 항구로 떠나기 전날 밤, 자원 봉사자들은 이민자들을 위해 파티를 열었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하나 된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날 밤, 이스라엘 정부 담당관들이 모임에 나타나서 자원 봉사자들에게 감탄했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들이 떠난 후, 자원 봉사자 회의에서 스티브가 말했다. “주님께 감탄했습니다.”
교만의 산을 평탄케 한 세 번째 항해
500명의 이민자들이 모여들었다. 선박 담당관이 나를 찾아왔다. “세관원들이 오늘 70명만 허락해 주었습니다. 고의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기를 간구했다. “주님, 주님의 백성들입니다. 기적이 필요합니다.” 항해 전날까지도 300명이 세관 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새벽 3시에 자원 봉사자들을 깨워 중보 기도를 부탁했다. 새벽 3시 30분, 영국의 자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구스타프씨,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가랴 4장 6절과 7절을 펴 보시겠어요?” 성경을 펼쳐서 읽어 보았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큰 산이 무엇인지 나는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관원들의 교만의 산을 평탄케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었다.
처음에 배에 오른 이민자들 중에는 노년의 부부가 있었다. 4일 간 부둣가에서 배를 기다리며 세관을 통과한 부부였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고 매우 지쳐 보였다. 그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정통파 유대인들은 노부부를 도와주지 않았다. 자원 봉사자들이 나서야 했다. 젊은 자원 봉사자 부부가 따뜻한 코코아를 가져와 그들에게 건네 주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이들을 지켜보았다. 남편은 할아버지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아내는 할머니를 안아 주었다. 그들은 사랑으로 노부부를 안기만 했을 뿐이었다. 적의가 가득했던 정통파 유대인들도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다소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출항일 저녁까지도 25명 정도가 배에 오르지 못했다. 하루가 지연되면 25,000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자원 봉사자 리더인 벤 하임이 말했다. “우리는 ‘한 사람도 이 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라’는 에스켈 39장 28절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나는 그 말씀에 즉시 순종해 사람들에게 말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이곳에 남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는 반대에 부딪히고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는 유대인의 귀환에 대해 약속되어 있는 성경 말씀들을 그대로 붙잡고 선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 모든 이민자들이 승선하기까지 27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다른 배가 항구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우리 배가 나가야 했기 때문에 오데사 세관원들은 마지못해 우리를 보내야 했다. 드디어 모든 대기자들이 승선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 어느 것도 유대인의 귀환을 막지 못했다.
흑해에서 흘린 회개의 눈물
수평선 너머 펼쳐진 흑해를 바라보았다. 이 아름다운 흑해조차 유대인들에게는‘어둠의 바다’였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대학살을 피해 스트루마 호를 타고 도망하던 769명의 유대인들은 엔진 고장으로 영국령인 이스탄불 항에서 입국 허가권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이들을 외면했다. 결국 스트루마 호는 최악의 조건으로 흑해에서 표류하며 허가를 기다리다가 70일째가 되는 날 폭발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다. 영국에서 온 자원 봉사자들은 스트루마 호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영국의 죄를 회개하기 위해 선상에서 추모회를 열었다. 영국의 한 목사는 목멘 소리로 말했다. “우리 영국인들은 스트루마 호에 탄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강퍅함을 회개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것은 죄악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유대인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는 영국 봉사자들에게 다가와 안아 주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들에게 등을 돌린 나라는 영국뿐이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직, 간접적으로 유대인 대학살의 공범들이었다. 우리가 유대인을 사랑하고 그들의 귀환에 관심을 갖는다면, 과거의 죄악은 축복으로 변할 수 있다.
6장 나처럼 낮아지라
아픔과 고난이 낳은 위기
1993년 4월부터 9월까지 25주간의 항해를 위해 500개의 침대를 가진 흑해선박회사(블라스코)의 여객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를 빌리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 하나가 해결되고 나면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외무부의 승인을 받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 있는 이민국으로부터도 첫 항해 날짜를 승인할 수 없다는 전갈을 받았다. 항구에는 연료마저 없었다. 첫 탑승 인원은 겨우 43명만 예약되어 있었다. 항해 날짜가 다가오자 믿음은 약해지고 몇 명의 자원 봉사자들은 그들의 첫 마음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사명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나는 탑승 전날 밤 팀원을 모두 불렀다. “오늘 밤 짐을 배에 다 실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항해를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항해를 할 것입니다.” 다음날, 아내와 나는 마지막으로 올라타는 이민자들과 배의 이동식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연료를 가득 채운 배가 다가왔다. 선내에서 중보 기도 그룹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모든 열악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이 일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그러나 다음 항해에는 이민자들이 처음보다 더 적게 등록을 했다. 유대인 협회의 예루살렘 본부는 항해를 방해하기 위한 지시 사항을 유대인 협회 관할 노동자들에게 지시했다. 만약 그들이 하이파 항구에 도착한다면 아무런 도움도 없이 부두에 마냥 서 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침내 우크라이나의 신문에는 크고 붉은 X자를 한 배의 사진을 배경으로 특집 기사가 났다. 신문의 제목은 “오데사로부터 하이파로의 항해는 일어나지 않는다”였다.
기도로 회복된 첫 마음
4월 말 오데사를 떠난 항해에는 가장 적은 인원인 10명의 이민자들이 탑승했다. 나는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었다. 자원 봉사자들의 반 정도가 떠나거나 해산했다. 한 밤중에 침대에서 일어나 주님께 소리쳐 울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사명감이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었다. 아내가 깨어나 나에게 말했다. “전에 세상에서 가장 큰 배를 만들었던 한 남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배에는 단지 8명의 사람들만 탔어요.” 아내는 노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이 상황에서도 우리의 사역이 주께로부터 온 것임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나는 함께 일했던 몇 명의 동역자들에게 런던의 연합 모임에 참석할 것을 권유했다. 모임 장소에는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리더들이 재정적인 문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들은 재정적인 부담을 함께 나눌 것을 재차 다짐했고, 에반에셀 단체는 국제적인 협력단체를 얻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우리의 항해가 계속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모임이 끝난 후 평화가 감돌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었다.
“내가 얼마나 기쁜지 아오?” 나는 아내에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제야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비록 이 일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사건 중 하나였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고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 일이 정말로 그 분의 일이며, 나는 그의 종들 중 한 사람일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가 사용하실 수 있는 자녀로 만드시는 사역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아내는 종종 나에게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하고 있는 일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에요”라고 말해 주곤 한다. 우리의 항해는 에반에셀 재단 자체의 사역 영역을 넘어선 하나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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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약속의 성취를 기대하라
아르메니아 공화국 방문
에스더라는 여성은 강하고 신실한 자원 봉사자이다. 마지막 항해 후, 그녀와 다른 영국 여성은 아르메니아의 심각한 상황을 살펴보고 유대인 공동체의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아르메니아 공화국으로 갔다. 그녀는 테레반 시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 리더에게 이스라엘로 가기를 원하냐는 물었다. 유대인 공동체 리더는“이스라엘로 가는 비행기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돈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에스더와 그녀의 친구는 그에게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영국으로 돌아간 그들은 비행기를 예약한 후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영국에서 인도주의적인 원조를 모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비행기 임대 비용을 지불하실 것입니다. 에반에셀 재단이 동참해야 하는지 기도해 보시겠습니까?” 에스더는 웃으며 나에게 요청했다. 나는 또 다른 공화국으로 사역을 확대해야 할 아무런 의무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 일에 참여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주님의 명확한 음성이 필요해.” 아내와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떠한 대답도 얻지 못했다.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고 잠잠히 서서 주님을 기다려야 했다.
에스더의 동료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대출을 요청했고, 그녀의 집을 팔 것이라 했다. 나는 신실한 중보자들과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것을 요청했다. 맨 먼저 말씀으로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은 아내였다. 그녀는 차용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라는 감동을 받았고, 누가복음 11장 5-8절에서 한 사람이 한밤중에 빵 세 개를 빌리기 위해 강청하는 구절을 보았다. 아내가 말했다. “그들은 정말이지 절망적이에요. 지금 이 비행을 위해서는 거의 한밤중에 가깝군요. 그들은 이 주 내내 문을 두드리고 있었어요.” 놀라운 것은 바로 그때 한 스위스의 중보자가 똑같은 말씀을 나에게 팩스로 보내왔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일이 옳다고 말하고 계심을 알았다. 나는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에스더에게 전화했다. 그 말을 하고 나자, 아내는 다른 성경 말씀을 나에게 나누었다. “너는 빌려줄 때에 다시 돌려받기를 기대하지 말라!” 그래서 나는 항공사와 직접 계약을 체결했다. 아르메니아의 유대인 협회는 에스더와 그녀의 친구에 의해 모집된 98명의 귀환을 위한 두 번째 비행의 재정을 공급하는 데 동의했고, 에벤에셀은 1994년 12월, 115명의 이주자들과 함께한 세 번째 비행을 후원했다.
8장 땅 끝까지 찾아가라
가득 채워질 이스라엘
아내와 나는 알래스카로 비행기를 타고 건너갔다. 6시간의 비행 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 시베리아의 황폐한 땅을 가로지르고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로 넘어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아내는 부정적으로 말했다. “노인과 어린아이들도 있을 텐데요. 이 지역에는 시베리아 호랑이, 곰, 늑대 같은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속으로 기도했다. ‘주님, 유대인들을 알래스카로 데려 오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어떤 증표를 보여 주세요.’ 계속 창밖을 바라보는 중, 아내는 비행기 아래의 산과 계곡과 동굴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날개를 펼치고 있는 큰 독수리였다. 그녀는 출애굽기 19장 4절 말씀을 생각해 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반유대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급진적인 민족주의 그룹들은 종종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 도시의 벽에 쓰인 낙서를 보았고, 유대인들은 멸절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문도 읽었다. 이제 초읽기에 들어섰다. 많은 중보 기도자들이 동감하는 바이고, 이제 그들은 고통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한다. 주님께서도 스가랴 2장 6절 말씀을 통해 강하게 알려 주신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하늘의 사방 바람같이 흩어지게 하였거니와 이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할찌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알래스카뿐 아니라, 캐나다와 미국, 유럽을 순회하면서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가도록 협력하고 있는 교회들과 기도 모임들, 그리고 개인들을 방문했다. 그때 한 친구가, 유대인들이 다른 나라로 도망가지도 못하고 어떻게 핍박을 받았는지 자신이 꾼 꿈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끔찍한 장면들을 보았다고 했다. 핍박받는 유대인들에게 오직 한 피난처가 있다면 그곳은 이스라엘이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 울면서 주님 앞에 물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돕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까?” 그때 주님은 커다란 세계지도를 보여 주었는데, 그 지도 곳곳에는 반짝거리는 수많은 불빛이 있었다. 그는 그 불빛들이 유대인들의 귀환을 돕고 기도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세대에 다시 한 번 유대인을 향한 박해가 일어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한 번 그들의 생명을 다하여 메시아 예수의 백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후기 - 부르심은 끝나지 않았다!
출애굽 작전의 출발
구스타프 쉘러는 에벤에셀의 100번째 출애굽 항해까지 함께했다. 그러나 1999년 12월 8일 우크라이나에서 드미트리 쇼스타비치호가 379명의 유대인 이민자들을 싣고 하이파항에 도착할 때는 함께하지 못했다. 그는 영국의 병원에서 역사적 항해를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에벤에셀의 사역을 한걸음 한걸음씩 인도하시며 확장시켜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에벤에셀의 리더들과 자원 봉사자들, 다른 나라의 동역자들과 재정을 지원해 준 헌신적인 사람들을 하나님이 인도하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에벤에셀 선교 단체의 획기적인 성장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나는 그분에게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얼마나 신실하고 정확한 지에 대해 감사했다. 그리고 이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2000년 2월, 그는 자신의 하늘나라로 ‘알리야(귀환)’했다. 하나님은 참으로 대단하신 경영자이다.
북방 땅에서의 큰 추수
‘출애굽 작전(Operation Exodus)’을 시작한 초기 7년 동안 20,000명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귀환하였고, 지금까지 50,000명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계속 귀환하고 있다. 그러나 구스타프가 말한 대로, 어느 날 교회는 엄청나게 많은 유대인들이 전 세계 각지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유대인들의 고토로의 귀환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재림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구스타프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것은 예루살렘에서의 100번째 항해를 자축하는 모임에서 연설한 ‘큰 추수’이다.
“지금 우리의 사역이 북방 땅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어려움과 반유대주의의 확대로 나라들의 문이 곧 닫힐 위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방 땅에는 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음을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에벤에셀의 사역은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특급작전